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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도서 리뷰] 그리스 철학에 대한 이해

그리스 철학에 대한 이해 어려운 책이었지만 나름대로 리뷰합니다.

철학에 대한 고찰

그리스 철학자들이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에 대해 세계 최초로 지적으로 혹은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으로 접근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서양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반영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는 탈레스가 하늘 보고 거닐다가 옆 도랑에 빠질 때에 이미 인도에서는 정교하게 발달한 철학적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상식적인 불문가지의 이슈이고 중국에서도 학문적 분위가 더 이른 시대에 싹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고립되어 있던 중남미에서도 이미 이 시기에는 나름대로 그리스에 거의 비견될 만큼의 지적 수준을 지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필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리스적 사고

그런데도 그리스적 사고가 이렇게 활개치고 있는 것은 역시나 현재의 서양 문명의 뿌리로서 그 연원이 그리스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왜곡에도 불구하고도 그리스적 문명을 연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현재 그리스 문명에 기초를 둔 서양의 압도적인 문명이 현재의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말은 현재의 서양 문명을 기초를 이루고 있는 좁은 의미에서 과학적 사고가 그리스적 연원에 뿌리를 두고 있어 우리가 불가분 하게 흡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며 동시에 이러한 서양 문명의 탐욕적인 논리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일정하게 틀을 지워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에 대한 자본주의적 논리가 비록 탐욕적인 영국 제국주의 하에서 여러 형태의 과학의 논리를 뒤집어쓰고 등장하였다 하더라도 그 연원은 어느 정도에서 그리스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자본주의적 탐욕의 논리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그리스적 사고 내에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고 있음도 붙잡아 내야 한다.

서양의 계몽적 각성

이러한 점에서 결국 그리스 로마적 사고는 현재의 우리가 자본주의의 탐욕적인 논리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든 우리는 그리스적 한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역사의 꼭두각시 임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흔히 계몽주의 이래 서양에서 중세적 관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과제 속에서 끊임없이 시도되었던 일련의 비판적 흐름 역시 서양의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본질적으로 그리스적 철학에 기댄 아니 보다 더 그리스적 요소에 뿌리를 두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 거대한 서양의 흐름에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흐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양의 계몽적 각성이 일정하게 인간의 해방에 기여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마는 그렇다고 이것이 서양의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에 대한 전면적 거부를 '실천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가들

가장 비근한 예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가졌던 동양에 대한 우월적 무지를 비근한 예로 들 수 있으며 심지어는 약자들의 철학의 시조인 마르크스도 동양적 생산양식을 정체성 이론으로 설명하는 등의 성의 없는 무지를 보인 것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한 무성의가 아니라 오랫 동안 서양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야만과 문명이라는 지극이 이분적인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서양의 그리스적 사고관에서 출발한 공격성에 대한 근거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레닌이 마르크스 사후 자본주의 약한 고리로서 식민지 국가에 있어서 혁명에 대한 합리적인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하더라도 결코 그리스적 뿌리인 플라톤의 귀족적 성격에 바탕을 둔 지극히 이분적인 그래서 다른 것에 대한 공격성을 조장하고 격려하는 사상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이성의 간교 아래에서 끊임없이 놀아난 서양 사상이 가지고 있는 있는 한계 때문에 시대착오적으로 공자니 샤트라니 어쩌니 하면서 - 현재 중국처럼 - 지나 간 동양 사상을 끌어 내자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이러한 행위는 이성의 간교가 제공해 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진보마저 부인하는 지극히 반동적인 시 고방 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자의 짧은 글을 통해서 여러 차례 누누이 강조했던 바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서양 사상의 한계를 충분하게 인식하고 이제는 그리스 로마적이라고 그리하여 정통이라고 이야기하는 멍청하게도 공격적인 주요한 서양의 지적 흐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서서 그것의 전면적인 수정과 폐기를 주장함은 물론 어떠한 새로운 이론적 시도와 실천적 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귀족의 창조

상당한 정도에서 이것은 이것은 서양의 그리스의 귀족적 요소에 근거한 관념적 철학에 대한 뒤집기를 시도했던 서양 계몽주의 정신에 있어서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이라는 이론에 반기를 들었던 정신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며 여기에 동양이라는 지역적 틀을 넘어서서 인간 전반에 걸쳐 존재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이와 우주에 대한 울림을 베이스로 깔아 넣음으로서 서양의 비판 정신이 가지고 있는 이분적인 그리스적 사고 바탕 때문에 쉽사리 결론 내려지는 서양의 역사 속에서 행해진 공격적 행동에 대한 논리적 합리화와 새로운 귀족의 창조라는 이성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엄연하게도 서양 사상에도 인간의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에 대한 저항하는 이론적 실천적 시도가 있었던 바 그것이 서양 사상 한계 안에 머물러 잇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서양 사상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노출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시도가 충분하게 선의적이었던 것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패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완전히 폐기하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승자 완전 소유'라는 서양 사상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고 거기에 모든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이와 우주의 울림에 대한 기억을 재생함으로써 중동적 사막의 황폐함과 유럽적 폭력성을 인간의 사회로부터 쫓아내자는 이야기인 것이다.

과학 정신의 출발점

현재 계몽주의의 아들인 서양의 과학 정신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정신의 모태인 중세적 압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사양의 비판 정신은 이미 과학의 세계에서 사라지고 인간의 욕망에 기댄 공격성 제거 불가능성에 대한 이론에 실천적으로 기대어 인간을 공격하고 제압하는 데에 앞장 서고 있다. 이것은 과학 정신의 출발점이 그리스적 이분적인 사고방식인 오직 귀족들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그래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 있다는 공격성에 근거로 하는 그리스 철학의 관념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나의 생각

원래 인류 사회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삶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독점하려는 소위 고급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인간의 창작품이 문제이다. 이런 점을 유념 하면서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에 대해 인간의 공격성 제거는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천박하지마는 나름대로 훑어보도록 하자. 혹시 귀에 익은 소리가 아니라고 그냥 불편해하지 마시라. 필자의 이야기가 불편한 것은 이 글을 일고 있는 독자계서 그동안 자본주의가 주는 철학적 논리에 충실하게 속았다고 한 번이라도 곰곰하게 생각해 보시라. 그리고 문제를 제기하신다면 충분하게 열린 마음으로 토론에 임할 것이다.

그리스 철학에 대한 이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